달빛과 물빛, 그리고 사람

 – 탑정호 출렁다리 –

 

논산문화원 박용신

 

어느 늦가을, 논산 탑정호 일원에서 열린 ‘탑정호 달빛걷기대회’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내리던 보슬비가 멈추자 둥근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간이 흐를수록 달은 점점 물 가까이 내려오는 것처럼 보였다. 물에 비친 달의 모습은 이백이 강물에 일렁거리는 달을 잡으려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일화가 떠오를 만큼 아름다웠다. 낮에 탑정호 수변데크산책로를 따라 탑정호수변생태공원까지 거닐 때와는 다른 정취를 느꼈다. 낮에 본 탑정호가 도심의 잘 가꿔진 정원이라면 밤에는 시골집 마당처럼 안온했다. 그날 두 개의 달이 뜬 탑정호가 오랫동안 마음에 자리하였다.

달이 떠 있던 자리에 세워지는 출렁다리를 볼 때면 ‘아쉽다’와 ‘궁금하다’는 두 가지 감정이 혼재했다. 출렁다리가 개통되고 여름 한낮에 다리를 걸었다. 함께한 일행에게 뜨거운 날씨에 걷자고 한 것이 미안하였지만, 다리를 건널 때 어떤 마음일지 알고 싶었다. 다리 위로 첫발을 디디는 순간 뜨거운 햇살마저 반가웠다. 사방이 물에 둘러싸인 다리 위에서 올려다본 하늘에는 물결치듯 흰 구름이 흘러갔다. 다리의 일부가 철제 메시로 되어 있어 그 구멍으로 바람이 지나면서 다리를 흔들리게 하고 거센 강풍에도 견디게 한다. 다리에 난 구멍과 흔들림이 오히려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이 역설적이었다. 구멍 사이로 보이는 물을 빤히 바라보면 발밑에 바로 물이 있는 듯했다. 다리를 걷는 내내 양옆으로 햇빛에 반짝이던 파란 물빛이 오래도록 마음에 머물 것이다.

밤이면 출렁다리와 탑정호의 물은 그 자체가 공연장이 된다. 다리에 이만여 개의 LED 조명이 설치되어 있어 미디어 파사드가 연출되고 음악에 맞춰 다양한 빛깔의 물이 공중에 수놓는다. 기억 속에 자리한 고즈넉한 밤 풍경이 아니라 불꽃놀이가 터지는 축제장처럼 화려하고 활기차다. 이것 또한 즐거운 경험이다. 그럼에도 탑정호에 달이 뜨고 물에 비친 달을 보면 주위와 상관없이 고요한 기운을 느낀다. 아폴로가 달에 착륙한 이후에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토끼 한 마리가 사는 것처럼.

탑정호에서 본 달빛과 물빛이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동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감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그 순간에도 시간이 지난 후에도 언제나 온기를 준다. 최근에 권선옥 원장님께서 은퇴하신 교장 수녀님을 모시고 탑정호 출렁다리를 방문하는 자리에 동행하였다. 바람이 불고 제법 쌀쌀하였지만, 수녀님은 원장님과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면서 주위의 풍광에 아이처럼 감탄하셨다. 나는 소녀 같은 수녀님과의 인연에 설레면서 내내 그 모습을 눈에 담았다. 출렁다리가 개통한 후에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찾아와 새로운 풍경을 만들었다. 중년의 친구들, 어린 자녀와 동반한 부모, 노년의 부모님을 모시고 온 자녀, 청춘들 등등이 또 하나의 추억을 쌓고 있었다. 지나는 사람들의 가려진 마스크 위로 행복이 그대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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